[독서 리뷰] 아무튼, 달리기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읽고 리뷰를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마음 한 구석에 드릉드릉하다가.. 2024년 새해를 맞아 시작해보고자 한다. 올 해 몇 권을 하겠다는 목표는 없고 그냥 시간 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하고싶다.
이곳에 기록될 첫 책은 김상민 작가님의 책 "아무튼, 달리기"
저자가 달리기를 하며 느낀 점들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아무튼 시리즈는 알기는 하지만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었는데 인스타그램에서 종종 보이는 작가님의 좋은 글들을 보고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해 킵해놨던 책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파트는 "마이 페이스" 파트.
이 파트의 거의 모든 내용을 하이라이트를 그어가며 읽은 것 같다.
달리기는 거리뿐 아니라 어떤 속도로 달릴지를 정하고 나아가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적절한 "마이 페이스"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 이 파트를 보고 달리기는 참 인생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빠른 페이스로는 긴 거리를 달릴 수 없고 천천히 뛰면 좀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다.
거리의 강박을 벗어던지면 속도에 신경 쓰며 달리는 단계에 들어선다. 이제 더 이상 '얼마나 멀리'는 중요하지 않다. 그 대신 페이스를 늘리고 줄이면서 속도마다의 다른 경험을 체득해 간다. 그렇게 다양한 페이스로 달리다 보면 편안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전력을 다해 뛰는 속도와 조금 지루하다 싶은 속도의 중간 즈음, 그 속도로 10km 정도는 무리 없이 뛸 수 있을 듯한 페이스. 많은 러너들이 그 편안한 속도를 '마이 페이스'라 부른다.
마이 페이스는 늘 고정된 절댓값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컨디션, 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도 미세하게 늘어지고 풀어진다.
삶에도 사람마다의 페이스가 존재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를 수도 혹은 느릴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우리는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내게 맞는 최적의 페이스, 다시 말해 가장 나다운 삶의 속도와 방식을 이미 알고 있다. 그 페이스로 각자의 크고 작은 목표에 닿기 위해 하루하루 힘겨운 레이스를 이어간다.
요즘은 나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찾아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느낀다. 남들과 비교가 아닌 오롯이 나를 관찰하며 나의 페이스를 찾는 시간. 살아가는 데 있어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삶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고 삶의 의미는 그저 살아내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순간들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내 삶을 결정한다.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면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 나만의 속도에 맞춰 나아갈 수 있을 때, 내 삶을 나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로 채울 수 있다. 나의 페이스에 맞춰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달려 나가고 싶다.
결국 보람이라는 동력은 금방 힘을 잃었고 나 역시 조금씩 지쳐갔다. 사실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는 건 성취감보다 더 본성에 닿아 있는 감정이다. 예를 들면 재미 같은 것. 더군다나 그게 취미의 영역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것 또한 공감 갔던 문장. 보람과 성취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지만 흥미와 재미만큼 나를 움직이게 하지는 못한다. 결국 재미있는 일을 따라갈 때 지속 가능성이 늘어난다. 나는 그래서 삶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흥미와 재미를 꽤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재미있다면 지속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다면 결국 그건 나의 가능성이 되기 때문이다.
목표와 성취 사이의 진자운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또는 내가 해오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목표가 높은 벽처럼 등장한다. 전에 없던 방법이 필요한 시기다. 그때부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목적 있는 달리기가 필요하다. 흔히 '훈련'이 라 부르는 고된 과정이다. (...) 훈련은 혼자보다는 함께가 낫다.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달리는 즐거움으로 고통을 상쇄한다.
이걸 보고 생각난 내가 활동하는 커뮤니티 "하이 아웃풋 클럽(HOC)".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혼자서 달리는 것에 지쳐서, 혼자 열심히 하는 것에 지쳐서 함께하는 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항상 마음 한 켠에 그런 갈증이 있었다. HOC는 나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려준다. 이곳에 들어와서 나의 고민을 같이 고민해 주고, 느슨한 연결감을 느끼게 해주며, 다양한 정보들을 나누는 동료들이 생겼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삶에서 결과는 종종 과정의 의미를 집어삼킨다. 달리기만 놓고 봐도 그렇다. 그동안 아무리 열심히 훈련했다 한들 대회 당일에 삐끗하면 결국 아쉬운 기록만이 남는다. 훈련하며 흘린 땀과 고통의 과정들은 초라한 결과 앞에서 허무하리만큼 빠르게 그 의미를 잃고 만다.
과정도 결과만큼 중요하다는 순진한 말이나, 결과에 연연 하기보단 과정에 의미를 두자는 몽상가적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속물 같긴 해도 결국 내가 발 디딘 세상에서는 과정보단 결과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삶의 원리를 거스를 순 없을지언정 과정의 의미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건 꽤 중요한 일이라 믿는다.
동의하면서도 동의하지 않았던 문장.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게 몽상가적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과정보단 결과에 손을 들어주는 세상이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그런데, 나는, 혹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은 나의 결과만 보고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나의 과정을 본다.
내가 모르는 타인의 평가와 인정에 의미를 둔다면, 결과에 의미를 두게 된다. 나를 모르면 결과만 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나의 과정을 봐주는 사람들 인정과 평가에 의미를 두고 싶다.
결국 중요한 건 어디에 무게추를 두느냐이다. 삶은 성공이 전부가 아니다. 결과가 전부가 아니다. 산다는 건 과정이다.
삶은 언젠가 끝나기에 어떤 과정을 삶에 들이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죽음을 맞이할 때 결과를 내지 못한 걸 후회할까, 과정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걸 후회할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결과를 부르짖어도 내 삶의 무게 추는 과정에 두며 살고 싶다. 그게 내 삶이 끝날 때 가장 미련 없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